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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7일 오전 11시, 성심당 본점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실 성심당엔 오픈 런(Open-Run)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올웨이즈 런(Always Run)이 더 적절하다. 문을 열 때만 사람이 몰리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연 순간부터 닫을 때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갓 구워진 빵은 즉시 진열되고, 손님들은 그것을 고른 뒤 계산과 포장을 거쳐 매장을 빠져나간다. 어쩌면 성심당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빵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갓 지은 밥이 가장 맛있듯,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낸 빵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건축 아카이브에서 성심당 본점을 다룬다는 것은 다소 의외의 일처럼 보인다. 이 건물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랜드마크도 아니고, 혁신적인 구조나 재료로 주목받는 건축도 아니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도 아니며, 화려한 건축상을 수상한 이력도 없다. 외형만 놓고 본다면 특별히 인상적인 건축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간적으로 매력적인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 건축도 아니다.
그럼에도 성심당은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건축이다. 그 이유는 대전의 그 어떤 건축물 보다도 아니 전국의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장소적 의미를 이처럼 크게 부각시켜주는 건축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의 본질은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성심당은 한국에서 가장 밀도 높게 사용되는 공간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즉 건축적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성심당 본점뿐 아니라 대전역점, DCC점, 롯데백화점까지 언제나 긴 줄이 이어진다. 때로는 빵을 사기 위해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기존의 건축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건축의 가치는 형태와 조형성에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찾고, 머물고, 기억하는 장소성 속에 있는가?
이런 점에서 성심당을 건축적으로 읽어내는 방식은 세 가지 층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생산과 판매의 공간 동선’이다. 빵을 만드는 과정과 판매, 소비의 흐름이 어떻게 하나의 공간 안에서 통합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둘째는 '도시 조직과의 관계'이다. 하나의 빵집이 어떻게 주변 블록을 변화시키고, 원도심의 흐름을 다시 활성화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셋째는 ‘시간과 장소의 켜’이다. 화재와 재건, 위기와 극복의 역사가 물리적 공간과 어떻게 중첩되며 축적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층위를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성심당 본점이 왜 하나의 건축 유산으로 기록될 가치가 있는지가 드러난다.

성심당에서는 빵의 생산과 소비가 하나의 연속된 프로세스로서 통합된다. 반죽이 되고, 빵이 구워져 진열되며, 손님이 그것을 선택하고 계산을 마친 뒤 포장해 들고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빵을 만드는 사람과 빵을 구매하는 사람이 뒤섞이고, 빵이 완성되어 판매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일반적인 제과점과는 다르다.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생산과 판매, 물류와 보관을 각각 분리된 시스템으로 운영하는데 비해, 성심당은 ‘현장에서 만들고 현장에서 소비한다’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대규모 물류 창고나 장기 보관을 위한 시설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대신 빵이 만들어지는 현장의 열기와 속도가 공간 분위기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원칙은 창업자 임길순의 삶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 12월 22일 흥남에서 1만 4500여 명의 피난민과 함께 탈출하여 거제와 진해를 거쳐 대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는 “당일 만든 것은 당일 판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남은 빵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었다. 이 단순한 원칙은 오늘날까지 성심당의 운영 철학이 되었고, 공간 구조 역시 이 철학 위에서 형성되었다.
결국 성심당은 단순히 빵을 파는 장소가 아니다. 빵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하나의 리듬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공간이다. 이러한 기본 원칙은 2013년 1월 14일 1주일간 진행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정 본점과 10월의 부산 롯데백화정의 팝업스토어에서도 지켜졌다. 이전에 제빵을 위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이들 공간에서도 밀가루 반죽에서부터 빵이 만들어지고 판매되어 포장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역시 끊임없이 연결된 하나의 프로세스로 통합되어 운영되었다.
3-1. 성심당의 시작: 대전역, 대흥동 성당 그리고 두 포대의 밀가루
성심당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와 직접 맞닿아 있다. 창업자 임길순은 함경남도 함주군 출신으로, 1950년 흥남 철수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하하였다. 이후 거제와 진해를 거쳐 1956년 서울을 향하던 열차가 대전역에서 멈춰 섰다. 기차 고장은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성심당과 대전의 관계를 탄생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살길이 막막했던 임길순은 대전역 근처 대흥동 성당을 찾아가 오기선 신부로부터 밀가루 두 포대를 지원받았다. 그는 이 밀가루로 대전역 앞 광장에 천막을 치고 찐빵 장사를 시작하였다.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성심당(聖心堂)'이라는 이름은 예수 성심(Sacred Heart)에서 유래한다. 가톨릭 신앙에 기반한 나눔과 모두를 위한 공동체 정신은 이후 70년에 걸쳐 성심당의 경영 철학과 공간 운영 방식의 근간이 되었다. 성심당은 1960년대를 거치며 노점에서 제과점 형태로 성장했고, 1970년 5월 은행동으로 이전하였다. 이때부터 성심당과 은행동은 서로의 역사를 공유하는 관계가 된다.




3-2. 성장과 위기: 프랜차이즈 실패와 2005년 대화재
성심당의 원래 본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동 153번지 매장은 3층의 50평 규모로, 1층이 매장, 2층이 숙식공간, 3층이 빵 공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임영진이 성심당의 경영을 이어받으면서 제품 혁신과 공간 확장을 본격화한다. 1980년에는 단팥빵의 달콤함, 소보로의 고소함, 도넛의 바삭함이 합쳐져 성심당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튀김소보로’가 탄생하였다. 1983년 여름에는 전국 최초로 포장 빙수를 만들었고, 1985년에는 생크림 케이크를 출시했다. 그러나 생크림이 오랫동안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임영진은 오히려 ‘3분 즉석 케이크’라는 타이틀을 걸고 손님이 주문하면 제빵사가 손님이 보는 앞에서 3분 만에 생크림을 직접 얹어 다양한 유형의 케이크를 만들어내었다. 새하얀 모습으로 아름답게 탄생하는 케이크를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 자체가 훌륭한 구경거리이자 퍼포먼스가 되었다. 임영진은 이처럼 새로운 빵을 만드는 과정을 손님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를 구경하는 모습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면서 빵을 소비하는 새로운 문화가 싹트게 되었다. 점차 무슨 날이든 성심당에 가면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겨났다. 이처럼 빵을 즐기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은행동과 대흥동 일대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에 임영진은 눈여겨 보아왔던 바로 옆 다방을 찾아가서 매매 의향을 타진하여 1986년 인수하였다. 이때 판타롱부추빵이 탄생하였다. 1992년에는 본점을 중구 은행동 145번지로 이전·증축하여 국내 최초로 베이커리 레스토랑을 개점하였다. 요즘처럼 커피숍이 많지 않았던 당시, 성심당은 미팅과 만남의 장소였다.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날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가족과 함께 돈까스를 먹던 행복을 나누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성심당에서 시작한 베이커리 레스토랑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성심당이 성장해나가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기업에서는 제과 프랜차이즈 사업이 진행되었다. 또 도시 인구가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로 몰리면서 원도심은 비워지기 시작했다. 대전에서도 1990년대 중반 둔산으로 정부청사가 들어오면서 공공기관, 기업, 사람들이 둔산지역으로 급격히 옮겨갔다. 대흥동과 은행동 일대는 그야말로 ‘격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동생 임기석은 별도 법인을 세워 성심당 프랜차이즈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프랜차이즈 사업은 2003년 부도 처리되었다.
이 실패는 역설적으로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 외부 확장을 포기하고 본점 중심의 운영으로 회귀한 것이 결과적으로 성심당을 지역 특화 브랜드로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임기석의 부도가 끝이 아니었다. 2005년 1월 22일, 창업 50주년을 맞은 본점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전소되었다. 시민들은 현장을 찾아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경영진이 자포자기하려고 할 때, 직원들이 나서서 복구작업에 뛰어들었다. 직원들의 이러한 자세에 감동한 임영진은 바로 중고 기계를 마련하며 재건에 힘을 보탰다. 그해 9월, 같은 자리에서 문을 다시 열었다. 이 화재와 재건의 스토리는 성심당이 단순한 제과점을 넘어 지역 공동체를 연결하는 자산임을 확인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4-1. 제과점 공간의 두 가지 층위: 후방과 전방
현대 대형 베이커리의 공간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후방(back-of-house)'과 제품이 진열·판매되는 '전방(front-of-house)'이 그것이다. 대다수의 상업 베이커리는 이 두 영역을 완벽히 분리하여 소비자에게는 완성된 상품만이 가시화된다. 성심당은 이 경계가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매장 안에서는 갓 구운 빵의 열기와 냄새가 그대로 전달되고, 직원들이 쟁반에 빵을 실어 나르는 장면 역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는 의도적으로 연출된 쇼룸이기보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생산과 판매를 동시에 해결해야 했던 현실적 조건의 결과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성심당 특유의 공간감을 만든다. 손님들은 단순히 완성된 빵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 안에서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4-2. 길모퉁이 출입문을 통한 공간의 효율성
성심당은 길모퉁이에 출입구를 두고 있다. 2005년 성심당이 불에 탄 이후 복구를 준비하면서 다녀온 일본 빵집 답사에서 본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 절박하면 통한다고 했나? 전혀 답을 찾지 못하다가 출장 마지막 날 길모퉁이에 있던 작은 일본 빵집에서 그 실마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즉, 모퉁이에 문을 내어 공간감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신 매장 크기를 대폭 줄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성심당이 가진 장점, 즉시 구워 신선하고 따뜻한 빵을 만드는 공장의 모습을 부각하기로 했다. 공장의 절반을 1층 매장으로 내려 빵을 만드는 과정을 손님들이 볼 수 있게 했다. 진열 매대가 절반으로 줄어드니 제빵사들의 부담도 절반으로 줄었다. 기부하는 빵 이상으로 남았던 재고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내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제빵 과정이 외부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빵을 만드는 공장은 더 이상 숨겨진 후면 시설이 아니라, 성심당의 핵심 풍경이 되었다.

4-3. 쟁반 동선과 군중의 흐름
성심당 본점의 판매 방식은 일반적인 제과점과 다르다. 유리 진열장 너머의 제품을 직원이 꺼내 건네는 방식이 아니라, 고객이 직접 쟁반을 들고 진열대를 따라 이동하며 원하는 빵을 집어 담는 자율 선택형 시스템이다. 이 방식은 슈퍼마켓의 동선 논리를 제과점에 적용한 것으로, 고객의 충동 선택을 유도하고 회전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 동선 시스템은 공간 설계와 긴밀하게 연동된다. 진열대의 배치가 고객의 이동 방향을 유도하고, 인기 상품인 튀김소보로·부추빵 등은 동선의 주요 지점에 위치한다. 주말 피크타임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매장 안을 이동하는데, 이 카오스적 군중의 흐름이 역설적으로 성심당 특유의 활력을 만들어낸다. 첫 방문자에게는 당혹스럽지만, 이 흐름에 익숙해진 단골에게는 의례적인 행동이 된다.
4-4. 2층 식당과 수직 동선
본점 2층에는 성심당이 운영하는 식당'플라잉팬'이 자리한다. 제과 공간과 식사 공간을 수직으로 연결한 이 구성은, 단순히 빵을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 식사와 휴식을 포함한 체류형 방문을 가능하게 한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주변에는 성심당의 역사 연표가 전시되어 있어, 수직적인 공간 이동이 동시에 시간의 이동이 되면서 성심당의 서사적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이 수직 동선은 지상층의 분주함과 2층의 상대적 여유로움을 대비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빵을 사기 위해 북적이는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행위는 성심당의 다층적 공간 경험을 완성하는 요소다.
5-1. 은행동 원도심의 맥락
성심당 본점이 위치한 대전 중구 은행동은 대전의 원도심이다. 대전시청과 충청남도청이 각각 서구 둔산과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고, 대형 상업 시설들이 둔산으로 옮겨가면서 은행동 일대는 전형적인 도심 공동화를 겪었다. 대전의 패션과 소비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중앙데파트가 2008년 10월 8일에 폭파 철거된 것은 대전 원도심의 막다른 현실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빠르게 증가하는 자동차 보급률은 열악한 도로 사정과 주차 환경을 가진 원도심의 약점을 더욱 부각시켰다. 시민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이 같은 크나큰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성심당은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는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권을 서로 묶어내며 원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은행동 원도심을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구심점이 성심당이라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대전상공회의소가 대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성심당은 2년 연속 대전의 대표 브랜드로 선정되었다. 대전광역시의 2019년 관광 실태조사에서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고 추천하는 장소 1위에 성심당이 꼽혔다. 하나의 민간 제과점이 공공 도시재생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5-2. 성심당 클러스터의 형성
본점 주변 블록은 지난 10여 년간 '성심당 클러스터'로 재편되었다. 본점 건너편에는 은행 2지점이, 골목 안쪽에는 케익전문점 케익부띠끄와 한국 전통과자를 판매하는 옛맛솜씨가 들어섰다. 폐업한 고시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성심당 문화원은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이다. 지하 1층은 메아리 곳간으로 1층은 카페&그로서리, 2층은 에코라이프 전시, 3층은 메아리 라운지, 4·5층은 갤러리 라루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이 클러스터의 형성은 부동산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시 공간을 점진적으로 재활성화하는 건축적 행위이기도 하다. 성심당이 인근 건물과 주차 부지를 순차적으로 매입·개조하면서 은행동 특정 블록의 물리적 환경 자체가 변화하였다. 후미진 골목길의 낡은 고시원이 갤러리와 카페를 품은 문화공간으로 전환되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의 동선이 재편된다. 이는 계획된 도시설계가 아닌, 하나의 민간 사업체가 오랜 기간에 걸쳐 주변을 조각조각 전환해 나간 유기적 과정이다. 성심당은 이미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식었던 도시 조직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도시 보일러인 셈이다. 사람과 냄새와 기다림과 온기를 순환시키고 있다. 대전 원도심 은행동은 성심당이라는 도시 보일러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5-3.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 장소 특정성(site-specificity)의 건축론
성심당은 수차례 수도권 진출 제안을 받았으나 일관되게 거절하였다. 서울 롯데월드몰 입점 제안, 롯데백화점 본점 팝업 이후의 정식 입점 요청 모두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원칙 앞에 무산되었다. 이 선택은 단순한 경영 전략을 넘어 장소 특정성(site-specificity)에 대한 철학적, 실천적 선언이다.
건축에서 장소 특정성은 특정 공간이 그 터와 맥락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개념이다. 성심당의 가치는 레시피나 브랜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전역 앞 찐빵집으로부터 이어진 70년의 세월과 은행동이라는 구체적 장소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성심당이 서울에 지점을 열면 그것은 더 이상 같은 성심당이 아니다. 이 직관은 장소와 건축의 관계에 대한 건축가들의 오랜 논의와 정확히 공명한다.
6-1. 기다림의 공간이 만드는 공동체
성심당 본점에서의 대기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평일에도 1시간 이상의 대기가 빈번하고, 주말 피크타임에는 2~3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2024년 성탄절에는 딸기시루 구매를 위해 새벽 5시부터 대전 지하철 중앙로역 지하상가까지 줄이 이어졌다. 이 대기 행렬은 도시의 공공공간을 잠시 점유하며 일종의 임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같은 목적을 가진 낯선 사람들이 같은 줄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시간, 이것은 도시 공간에서 점점 희귀해진 공유 경험의 한 형태다.
6-2. 1987년 민주화 항쟁과 빵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성심당 직원들은 은행동 일대에서 시위에 나선 시민들과 이를 진압하는 전경들 모두에게 빵과 물을 나누어 주었다. 이 행위는 이후 공안당국의 수사 대상이 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동시에 성심당이 정치적 대립의 경계를 초월하여 인간적 연대를 실천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계기가 되었다. 음식을 나누는 행위가 장소적 공간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사례다.
6-3. 착한 가격과 공간의 민주성
성심당은 대형 백화점 입점 기회가 있었음에도, 저렴한 임대료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 운영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가성비 높은 가격 구조를 지켜왔다. 튀김소보로 6개가 들어간 한 박스가 10,000원이라는 가격은 이 빵집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도시를 구성하는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시키는 장치다. 공간의 물리적 접근성만큼이나 경제적 접근성 역시 공공성의 중요한 조건이라 할 때, 성심당의 가격 정책은 공간의 민주성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7. 성심당 문화원 - 기억의 공간화
성심당 문화원은 본점 인근 사람들이 빠져나간 폐고시원을 리모델링한 지하1층·지상5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2022년 5월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성심당의 역사를 공간 속에 아카이빙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건축아카이브의 맥락에서도 특히 주목된다. 폐고시원의 물리적 구조는 원칙적으로 개인 거주 공간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이 닫힌 격자 구조를 공유와 전시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 성심당 문화원의 건축적 흥미를 만들어낸다. 낡음과 새로움, 사적 기억과 공적 전시, 폐쇄와 개방의 대비가 이 건물 안에 공존한다.


1층 카페&그로서리에서는 유기농·친환경 식품과 성심당 관련 물건들이 전시·판매된다. 2층은 '옛날의 추억'을 소환하는 물건들로 채워진 에코라이프 공간이다. 오래된 전축과 풍금, 재봉틀 등의 소품들이 빵의 역사와 동시대 생활 문화를 함께 전시한다. 3층 메아리 라운지는 지역 작가들의 개인전과 프로젝트 전시를 위해 열어두는 가변적 공간이다. 4·5층 갤러리 라루에서는 성심당이 문을 연 1956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전시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직원들이 직접 작성한“나에게 성심당이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 빵 모양 메모지에 적혀 전시되어 있다.
“단순히 빵을 만드는 곳이 아닌, 모든 이의 행복을 굽는 가치 있는 기업이다.”
“내가10년 이상 성심당과 함께한 시간의 가치를‘성심당’ 세 글자로 증명해주는 곳.”
“정서적 안정감, 내 삶의 원동력, 희망의 끈.”
이 문장들은 성심당이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삶의 기억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한편 전시장 한쪽에는 프란체스코 교황 방한 당시의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성가가 잔잔히 흐르고 있다. 이는 성심당의 근간에 자리하고 있는 가톨릭 신앙의 배경을 조용히 드러낸다.




8. 아카이브의 시선 -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성심당 본점을 건축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기존의 건축 기록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면과 입면도, 구조와 재료만으로는 이 공간의 본질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기록되어야 할 것은 생산과 판매의 동선이다. 밀가루가 반죽이 되고, 빵으로 구워지고, 손님의 쟁반 위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배치되고 가시화되는지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제빵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둘째는 군중의 흐름이다. 시간대와 계절, 신제품 출시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방문객의 밀도와 이동 동선을 기록하는 일은 성심당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건물은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흐름을 조직하는 하나의 장치처럼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주변 도시 조직의 변화 과정이다. 1990년 이전부터 현재까지 은행동 일대 블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성심당의 확장이 주변 도시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지적도와 항공사진, 현장 조사를 통해 함께 기록할 필요가 있다.
성심당은 ‘건축의 힘’이 반드시 거대한 규모나 혁신적 공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매일 빵을 굽고, 그 냄새와 열기가 골목으로 스며들고, 사람들이 그 앞에 줄을 서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공간에 축적되는 것, 바로 그것이 건축이 만들어내는 가장 진실한 장소성일 것이다.
지난 4월 말, 서울에 있는 아내가 모처럼 대전에 내려왔다. 주중에 혼자 생활하는 나를 보며 집이 엉망이라 핀잔을 주더니, 슈퍼에서 장을 한가득 봐와 밑반찬을 만들고 집안청소까지 해주었다. 정리된 집 안에 앉아 있으니 비로소 집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새삼 아내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브런치를 사주겠다고 나섰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대전컨벤션센터(DCC)의 성심당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성심당을 일부러 찾아간 적은 없었다. 가끔 모임이 있어서 본점 2층에서 식사하면서 또는 대전역점, 롯데백화점 지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놀란 적은 있었지만, 막상 내가 그 줄 앞에 서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 행렬이 펼쳐져 있었다. 빵을 사기 위해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잠시 막막해졌다. 다행히 우리는 빵 구매가 아니라 브런치를 먹으러 간 것이어서 2층으로 안내받아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 역시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비고 있었다. 운 좋게 막 자리가 하나 비어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샐러드와 빵을 주문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푸짐한 음식이 나왔다. 아내는 처음에는“겨우 9천 원짜리 샐러드를 먹으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막상 음식을 보더니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서울에서 이 정도 구성의 브런치를 먹으려면 적어도 25,000원 이상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식사하는 내내 바깥의 줄이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커피까지 마시면서 두 시간 가까이 머무르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왔고, 대기 행렬의 길이는 좀처럼 짧아지지 않았다. “Open Run이 아니라 “Always Run”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태훈,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모두가 행복한 경제』, 남해의봄날, 2016.
성심당문화원 갤러리 라루, 전시 〈연결: 시간을 잇다〉, 2022.
대전상공회의소, 「대전 대표 브랜드 조사」, 2022–2023
대전광역시, 『2019년 대전관광 실태조사 및 발전방향 연구』, 2019.
성심당 공식 홈페이지 및 성심당 발행 리플렛.
대전도시재생지원센터, 「낡은 고시텔의 변신, 성심당 문화원…도시재생의 새로운 시도」, 『대전도시재생지원센터 웹진』, 2022. 9.
특허청, 「튀김 소보로 빵의 제조 방법」, 등록특허 제10-1104547호, 2012. 1. 3.
아눅 그레뱅 지음, 연숙진 옮김, 『경계를 허무는 기업들: 사랑과 나눔의 문화로』, 이유출판, 2026.
성심당, 대전, 은행동, 빵집, 대흥동 성당
배재대 건축학과 교수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용산공원조성위원회 위원
저탄소사회를 지향하는 목조건축협회 회장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역임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한국건축가협회 역사위원장 역임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 역임
도코모모 코리아 회장 역임
제1회 꾸밈건축평론상 수상자로서 건축평론동우회 동인이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을 만들고 최근까지 관장을 역임하는 등 각종 전시 기획을 진행했다. 덕수궁 지표조사를 통해 선원전 영역의 가치를 밝혀냈고, 국군기무사 본관의 가치를 밝혀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현장에 파견되어 성공적으로 일을 수행했다. 국제항로협회(IALA)가 선정하는 2022년 올해의 등대로 포항 호미곶등대가 선정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명동성당, 석조전, 중명전, 고려대학교 본관 보수공사에 참여하였다.